19일부터 24일까지 뉴멕시코에 위치한 산타페 연구소에 다녀 왔다.
혜진님이 계시기도 하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무리를 해서 일정을 잡았다. 실은 작년 말부터 가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럿 겹쳐서 5월에야 시간이 났다. 따로 목적을 정한 여행은 아니었기에 복잡한 일들이 해결된 틈을 타 얼른 예매하고 열시간을 날아 뉴멕시코로 향했다.
산타페 연구소는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곳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라니 위치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그럭저럭 맞아 들어 갔지만,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타페 도심은 예술이 가득한 곳이다. 덕분에 상세한 계획 없이 갔던 산타페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거리와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금요일엔 연구소의 포닥 분들과 파티를 열어 이상한 한국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고, 월요일엔 앨버커키까지 오신 남운님과 식사도 함께 하고 El Farol에서 늦은 저녁을 보냈다. (객식구가 객을 맞이하는 격이라니!)
'참 자유로운 곳' 이었다. 월요일 저녁에 연을 만들어 날렸는데, 그 파란 하늘이 뇌리에 박혔다.
지난 일 년 동안 타향 살이보다 어려운 것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부담이었다. 경제 물리학 공부를 잠시 접어 두고 미국으로 건너와 의대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며 굉장히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공부한 것이 많지 않다보니 의대에서의 기본적인 태도는 "배움" 이었다. 그나마 생물리학이나 뇌과학등 여러 관련 과목들과 프로젝트들을 했던 경험 덕에 먹고 살았지만, 일 년이 못되는 기간동안 새로운 것을 배운 만큼이나 원래 가지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잃었나 보다 했다. 여유를 즐기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생활의 아름다움은 일상의 부담으로 치환되는 중이었을까. (은진씨 어디갔어 흑흑)
산타페에서의 경험을 요약하자면 '재적응 기간' 이라 이름 붙여 볼 수 있을 듯.간만에 익숙한 언어와 낯익은 용어와 반가운 표현들을 들으며 얻은 만큼 잃었던 것들이 무엇들이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두에게는 같은 길이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떤 목적에 썼다는 것은 다른 어디엔가 쓰일 수 있었던 시간을 덜 썼다는 의미이다. 산타페에서의 일주일은 미국에 와서 얻었던 것을 대신하여 잃었던 것이 어느 만큼 이었는지 떠올리고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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